美, '중거리핵 조약' 중단...러 때리고 中 겨냥[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입력 2019-02-02 06:45   수정 2019-02-03 15:36


미국이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 핵전력(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조약 이행을 중단하고,러시아가 협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6개월 뒤 탈퇴하기로 했다. 러시아가 조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게 이유지만, 이면에는 조약에서 제외돼 있는 중국까지 포함하는 새 조약을 맺으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대국간 ‘신냉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폼페이오 “러시아, INF 위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협정 준수로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은 종결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30차례 이상 INF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면서 “러시아의 INF 위반은 수백만 명의 유럽인과 미국인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고 양국 관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기회를 약화시킨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다시 더 나은 기반 위에 놓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도 INF 위반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안들과 관련해 불안정한 행동 패턴을 바꾸는 건 러시아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불이행을 선언하고 6개월이 지나면 기술적으로 탈퇴 효력을 갖게 된다. 미국의 조약 이행 중단 조치는 2일부터 시작된다. 양국은 미국이 통보한 시한(1일) 직전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조약 존속을 위한 협상을 벌였지만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4일 러시아가 조약을 준수하지 않으면 60일 후 이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시한이 올해 2월2일이다.

◆트럼프 “새 조약 체결 희망”…중국도 겨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을 통해 낸 성명에서 “러시아는 오랫동안 아무런 처벌없이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 동맹국들과 해외 부대를 직접 위협하는 금지된 미사일 시스템을 개발·배치하면서 조약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은 INF 조약에 따른 의무 이행을 중단하고,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하는 모든 미사일과 발사대, 관련 장치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6개월 후 탈퇴를 위한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우리 자신의 군사적 대응 옵션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다른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협력해 러시아가 불법적인 행동을 통해 어떠한 군사적 이득을 얻을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군축 조약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모든 사람이 크고 아름다운 방에 모여 훨씬 더 좋은 새로운 (군축) 조약을 체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러시아가 INF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중국을 거론하면서 “그들(중국)도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에도 “장차 언젠가 시(진핑 중국) 주석과 내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심각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군비 경쟁에 대한 의미 있는 중단을 논의하기 시작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푸틴 “INF 조약 중단”
미국의 조치에 러시아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일 “우리의 답은 대칭적으로 될 것이다”며 “미국의 파트너들이 조약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고 이에 우리도 참여를 중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국방부와 외무부에 “앞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협상도 먼저 제안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러시아의 수상 발사 대함미사일 ‘칼리브르’의 지상 발사형 버전을 만들고, 중거리 극초음속 지상 발사 미사일 개발에도 착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소모적 군비경쟁으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국방 예산을 늘리지는 않겠다고 했다. 미국과 섣불리 군비경쟁을 벌였다가는 오히려 러시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을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 먼저 배치하지 않는 한 러시아도 이 지역에 유사한 무기를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협상을 위한 문은 열려 있다”며 미국과의 대화 여지를 남겼다.


◆중국 “INF 조약 다변화 반대”
중국은 미국의 INF 조약 이행 중단이 중국을 포함하는 다자간 군축협상으로 이어지는데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일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미국의 INF 조약 이행 중단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INF 조약을 대신할 다자간 군축 조약 협상에 동의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INF 조약을 다변화하는 것은 정치, 군사, 법률 등 복잡한 문제가 있고 많은 국가가 관련돼 있다”며 “중국은 조약의 다변화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조약을 잘 지키고 이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일본 “미국 이해한다”면서도 ‘러시아 눈치’
일본 정부는 미국을 편들면서도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듯한 입장을 보였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1일 기자들에게 “미국의 문제의식을 이해한다”면서도 “조약이 종료될 수밖에 없는 환경은 세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아베 신조 정권이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고노 외무상은 그러나 “일본은 미국이나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관계국과 긴밀히 협의해 군축 환경에 이바지하는 체제 구축에 공헌하고 싶다”며 중국을 포함하는 새 미사일 조약 체결을 지지했다.


일본 언론에선, 미국이 INF 조약에서 탈퇴한 뒤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 그동안 INF 조약 때문에 배치할 수 없었던 신형 미사일을 괌 등에 배치하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이 위기감을 느끼도록 한 뒤 협상의 장을 만들어 미·중·러 3개국이 참여하는 신형 미사일 억제 조약을 체결하려는게 미국의 구상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이 과정에서 미국의 신형 미사일이 주일 미군기지에 배치되면 일본이 미·중간 군사적 대립의 최전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나토 “미국 전적으로 지지”
나토는 폼페이오 장관이 ‘조약 이행 중단’을 발표하자마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유럽·대서양 안보에 대한 위협과 INF 조약 준수에 대한 신뢰할만한 답변 제공 및 조치 거부를 지적하며 “미국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또 러시아에 향후 6개월을 “INF 조약 유지를 위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조약)준수로 복귀하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1일 “미국이 조약을 취소하기로 한다면, 우리는 6개월을 대화하는 데 사용하도록 가능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한 것은 명백하다”며 “중요한 것은 대화 창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INF는 냉전시대 서유럽 안보의 핵심
INF 조약은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됐다. 양측의 군비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의 첫 산물로, 사거리 500~1000㎞의 단거리 미사일과 1000~5500㎞의 중거리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 조약의 골자다. 모스크바 인근 미사일 기지를 기준으로 볼 때, 사거리 500㎞ 미사일로는 서유럽 타격이 불가능하며, 5500㎞ 미사일은 서유럽을 공격할 순 있지만 북미지역은 타격할 수 없다. 때문에 INF 조약은 주로 유럽 안보와 직결돼 있다.


미국은 수년전부터 러시아의 조약 준수 여부를 문제 삼아왔다. 특히 러시아의 신형 지상발사 순항미사일 9M729이 미사일이 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폐기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가 480㎞여서 INF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자체적으로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탈퇴 구실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탈퇴로 INF 조약이 무력화될 경우 유럽 등 국제사회에서 미사일 개발과 군비 확장 경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영국 BBC는 미국의 INF 조약 이행 중단에 대해 “미국이 냉전시대 중요한 군비 억제 참여를 중단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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